정치적으로 진보와 보수에 대한 개념과 인식이 너무 이기적 판단으로 남용하면서, 진정 두 이념적 성향에 대한 본질적 정체성도 왜곡되고 있으며, 특히 정친인들의 사적 이념으로 진보와 보수에 대한 이해와 정치 권력자로서의 판단도 혼재 시키다 보니, 정작 이념적 가치관 자체까지 혼란에 휘말린다. 그러니 정치는 신뢰를 잃어 종교적 믿음에 맹종하게 만들고 ,,,,
결국 정치적 책임이 가장 크다.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시간적 진행을 하는 만큼, “과거는 현재를 선행하지 못하고 현재는 미래를 선행 할 수 없다”는 개념에서 진보를 정의를 하고,
진보는 물리학적 논리로도 규명할 할 수 있도록 구체적 정립과 함께, 늘 상대적 자각 속에서 공정한 상호균형이 자아에 체화 되고 인식이 돼있어, 시간적 진행으로 미래지향적이며 창의적 가치를 필요보다 중요성을 우선하고,
내재된 자유의지로 선택하며 창의적 창출력과 실천적 의지를 발달 및 체화 시켜 성격화 돼야 진보라 여긴다.
진보적 자유의지로 의식을 계속 확장 시켜갈 수 있어야 되고. 창의적 자유의지로 사유의 아름다운 풍요를 만끽할 수 있으면서, 창의적 창출력 향상을 위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상대적 진행은 시공간적으로 대상과 함께 포함 돼 진행하기에 상대를 배려하며 조화로운 균형을 유지하고,
영원히 무의 무한한 공간에 유적 의미를 화장해 갈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나이를 많이 먹을수록 생리적으로 보수화 돼가는 것 부정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진보 의지가 정립되고 성격 돼 있음 보수적 이기로 탐욕에 지배 당하지 않으며 공정성이 체화 돼 사회적 인간으로 존중 받을 수 있다.
언제나 '청춘'의 열정으로 .... (사람의 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진보적 자유의지가 충만한 청춘 ! )
진보나 보수를 객관적 관점에서 정치 및 사회적 이념으로 판단하는 것과 개인적인 관점으로 자신의 가치관에 따른 진보와 보수적 가치관 정립은 다른 방향성으로 인해 구분이 되며, 논리로 정립할 때 관점에 따라 진보나 보수적 성질에 따른 구분을 달리 해야 된다.
개념적으로 창의적 자유의지를 발달시켜 성질이 되고 성격 돼, 예측 가능한 연속성을 긍정적 의지로 발달 시키면서 무한한 무적 공간에 유적 의미를 확장을 할 수 있고, 진정 ‘자유’ 의지와 순수한 이성이 살아 존재할 수 있어야 진보라 할 수 있고,
반면에 보수는 도전보다는 현재 안위 유지를 위해 ‘이기’(利己)적 본능에 충실하며, 기득권 유지 우선으로 과거에 종속이 돼 창의력이나 자유의지보다 자신의 기득권을 고착 시키려는 이기로 인해, 상대를 공평하게 존중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공정과 충돌하면서 권위로 상대에 군림하려 하니 진보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기(利己)는 근본적으로 공정성을 파괴 시키는 탐욕에서 발로하여 상대를 비창의적 경쟁의 대상으로만 여기니, 더욱 기득권으로 이기적 욕심을 유지하려 탐욕 할 수단을 찾으면서 불공정이 유발될 수밖에 없고,
불합리한 한국 보수의 권력은 일제 식민지 사관에 뿌리를 두고 있어, 더욱 탐욕 수단으로 권한을 남용하니 제도적 불합리와 공정을 원하는 자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보수 정치는 이중적 불합리를 합리화 시키려 자유를 왜곡하고 권력을 남용해 수직사회를 고착 시키려 계급사회를 지향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 수단방법 가리지 않으면서도 입으로는 공정을 남발하니,
이중적인 행태로 진보 및 공정과는 불가피하게 충돌과 저항을 유발 시킨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사실상 정치가 필요하지만,
한국 보수 정치는 오히려 자신의 기득권과 탐욕 수단으로 정치를 남용하니, 국민 간 적대적 증오와 혐오는 학대 되고 인내할 수 없을 만큼 팽창 돼 위기를 초래하고 있으며,
그러니 이념적 진보나 보수이기 전에 정치를 하려 한다면 개인적으로 보수적 사고를 가져서는 안 된다.
보수 정치가 국가 안정과 자유 및 특히 안보 팔이로 미자본제국에 종속 돼 맹종하면서,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짓은 자주 국가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고, 특히 미국 유학파들이 현재 한국 지배계급을 형성하면서 오만한 엘리트 의식으로 국민 위에 군림 해 식민지 국민 다루듯 차별화 시켜 국민 간 적대적 양극화를 조장하고,
식민지 사관 유전된 노예근성으로 '맹종자'들 양성하는 짓은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악행으로 단호히 배척해야만 된다.
현재 한국의 극단적 혼란과 적대적 양극화 사회가 된 원인에 미국이 있고, 그 미국에 종속된 보수 정치인들이 사실상 현재 위기의 주범이 됐다.
근대에 한국서 권력을 잡으려면 미국 유학생이 돼야 되고, 자식들 미국에 유학을 보내야만 기득권자가 되는 사회가 되면서 부터 그릇된 사회 환경으로 변질 됐고,
비 이성적 이기를 키운 것도 자본이라는 수단이 발달하며, 상대적 보편성보다 자신의 이익 수단을 우선하게 만든 주된 원인에 미국 유학파들의 미국식 자본주의 제도를 비판 없이 수용하면서 발생 됐다 여기며,
(가치관이 시공간적 진보의지로 발달하는 자와 자본의 단편적 계산방식으로 판단하는 보수주의 성질은 상대에 상반된 영향과 결과를 초래하고, 자연적 환경과 문화가 잘 보존되는 사회보다 자본 우선하는 현대 문명으로 발달한 사회일수록 상대를 배려지 못하며 양극화를 초래한다.)
불공정이 보편화 된 현재 한국은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으며, 상식은 사라지고 불평등과 적대적 양극화로 혼란을 자초하고, 더불어 국가 경쟁력도 추락하게 만들면서, 국민들은 국가를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국가에 자긍심을 가질 수 없는 국민들은 애국심도 가질 수 없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창의성 및 생산성도 저하 되고, 가장 열정과 창의적인 젊은 층 자식 출산도 못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친일 청산 못하면서 국가에 대한 자주적 국가관 정립을 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보수는 부득이 개인의 자기중심적 이기를 우선하면서 진보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 진행 속에 사회가 구성되고 서로 연결 돼서, ‘나’ 하나가 모든 ‘기준’이 절대 될 수 없는 사회적‘인간’이라고 사람을 규명하는데도, 보수적 이기는 날로 확대되면서 상호관계는 악화 돼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 불가분 갈등과 불신은 적대적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더우기 정치가 이를 선동하고 부추기니, 이제 상대를 혐오하기에 이른다.
‘이기’는 반 상대적 성질로서 사람이 ‘사회적인간’으로 진화 된 자체를 역행하니 공동체를 파괴하며, 사람이기 전 동물적 적자생존으로 회귀 시켜 비창의적 무한 경쟁속에 혼란만 가중되니,
창의적 의지나 창발적 사고를 발달 시키지 못함은,
결국 산업적 창출력을 약화 시키니 국가 발달은 '한계'에 봉착 되고, 사실상 경쟁력을 악화 시켜 잃게 된다.
진보적 ‘자유의지’와 보수의 ‘자유’는 전혀 다르며, 자유와 인권은 스스로 자각 할 수 있어야 되고 스스로 쟁취를 하여 획득해야 존재하는 것이지,
스스로 쟁취하지 않은 자유는 피상적인 허구로서, '자유'의 의미도 모르는 ‘맹종자’들에게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수 정치인들의 선동에 종속 돼 자유를 외치는 아이러니가 진행되는 현재 한국의 상황은 애처롭기 까지 한다.
아직도 친일 청산 못 해 일제 식민지 사관 세습되고 유전 돼 발생되는 비극 ....
특히 한국의 구태한 현행법은 자체가 과거적 성문법으로, 법을 전공하는 학습 과정을 통해 보수 성질로 고착되고, 친일청산 못 한 대가로 식민지 사관 유전 및 미국의 자본 가치 우선하는 이기적 자본주의에 종속 돼 이기적 인간으로 성질 돼가며,
사실상 ‘종속’ 된 성질은 피동적인 사람으로 성격 돼, 인격마저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자유의지도 함께 상실) 불안한 믿음을 맹종으로 신뢰를 구걸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개인적으로 사람의 발달 과정에서도 열정적인 젊은 의지와 다르게, 늙어가면서 차츰 진보적 의지는 기득권을 유지하며 평안에 안주하려는 나태한 보수적 성질을 가질 수 있으나,
진정 진보적이고 창의적인 의지는 일관성있는 가치관이 정립 돼, 단순하게 보일 수 있지만,
객관적 완성도를 높이면서 대중적 공감과 함께 보수로부터도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된다.(작품 완성도가 높을수록 단순하게 보여질 수 있으며, 창의적 완성도가 높을수록 진정 대중 공감과 함께 '존경'도 받게 된다.)
한국 정치는 신뢰를 상실하였으며 국민 간 신뢰가 퇴색되니, 종교적 믿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더욱 정치 불신을 키우면서도, 맹종자 선동해 정치적 이용을 서슴치 않는 극우 보수 정치인들로 인해,
적대적 증오를 넘어 혐오를 키우면서도 남 탓으로 책임 전가 하는 짓이 상식이 돼버린 현재.
진보적 의지로 객관적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자가 정치를 해야 되며,
아름다운 공감을 선물하는 지도자 존경 받으며 자연스럽게 추종하지,
권력과 무력적 힘으로 지배하는 자 절대 존경하지 않는다.
존경 없는 계급 사회는 반듯이 붕괴되게 돼 있다.
진보나 보수를 떠나 진정 공정사회를 위해서는 “자유에 따른 의무와 권리에 따른 책임"이 공정하게 적용돼야 한다.
대한민국은 책임에 대한 상벌 규정이 없어, 무책임을 허용하는 것으로 결국 권력자에게 권한 남용을 허용해주고 있는 것이며, (사법 판단은 '양심'과 '자유심증'으로 무책임한 판결권을 부여하니, 현재 사법농단으로 이 지경이 됐고 ..)
또한 모든 안전사고와 불공정의 원인에 무책임이 원인이 되고 있으나,
그러나 진보나 보수에서 법을 개정하는 정치인들 누구도 책임에 대한 상벌 규정 개정을 하지 않고 있는 나라이며,
단순히 추상적 개념으로 무시를 하면서, 스스로 책임을 전가하고 남 탓만 반복하고 있는 나라가 됐다.
더불어 모든 ‘신뢰’는 상실돼 불신은 불안을 가중 시키고, 나약한 의지는 맹종병자로 만들며,
믿음을 통한 안정과 평안한 영속성을 추구하는 종교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상대를 악마화 시키고,
갈수록 자신의 비열한 권력 수단으로 맹종병자 양성하는 극우 정치는 국가를 파괴 시키는 행위로서 분명 매국질이기에, 국민과 국가까지 파괴를 시키는 가장 악질적 행위로 처벌 될 수 있어야 되고,
권력 남용을 위해서 책임에 대한 상벌 규정을 외면하는 자들이, 입버릇으로는 늘 공정과 '안전사회'를 배설하는 자 정치 자격이 없으며, (늘 입버릇으로 국민 팔이 하듯 ...)
과연 책임에 대한 상벌 규정을 개정할 수 있는 진보적 정치인 출현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정치가 먼저 국민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절대다수가 원하는 법과 제도부터 국가관 정립과 함께 혁신적 개혁이 이루어져야 ....
왜 입법부와 정치 권력자들 책임에 대한 상벌 규정 개정을 하지 않는 이유 떳떳하게 말 할 수 있는 자 없는지 ?
댓글
아주 편협한 이분법적 사고체계 잘 읽었습니다. 상태가 좀 많이 심각하신 듯 하네요 극우 보수 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정반대 이지만, 논리 전개는 똑 같으시네요..이쪽은 합리적이고, 선하고, 이타적인데 저쪽은 반대다..잘 읽었습니다.